익숙함이 그리움을 채울 수 없을 땐 스카이프를 합니다.....

배부른 풍만함도 외로움을 채울 수는 없고
생활의 익숙함도 그리움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출장이든, 여행이든 외국에 있을 때 저에게 가장 곤란한 사항은 바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문득 밀려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래도 요즘엔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10여년 전엔 당시로선 유일한 통신수단인 국제전화에 의존했습니다. 당시 만든 KT Card는 해외에서 특별히 카드나 동전이 없이도 해외의 공중전화에서 긴급전화로 연결해서 통화를 할 수 있고, 요금은 한국의 집전화로 통합고지되는 당시로선 매우 편리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KT Card를 가지고 다니며, 해외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가족에게 소식을 전할 때 이용합니다.


얼마 뒤 핸드폰이 대중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CDMA 방식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핸드폰은 자동로밍이 안되는 국가도 많았고, 설령 로밍이 되어도 출장 후 한두달 후에 고지되는 막대한 금액의 폭탄고지서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GSM 핸드폰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수년전 두바이 공항 면세점에서 70달러에 구입한 삼성 GSM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방문하는 국가 공항이나 상점에서 해당국가의 심카드를 사서, 장착하면 해당 국가의 핸드폰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편리한 이 방식을 활용해, 케냐, 몽골, 스리랑카, 루마니아 그리고 이곳 리비아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방식은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이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 것은 바로 인터넷이었습니다.  이제 인터넷은 전세계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의 속도와 성능에는 많이 떨어지지만 아시아의 고산지대에서도 아프라카의 시골마을에서도 동유럽의 들판에서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으로 조그만 인내하면 한국의 소식을 접할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화상통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화상통화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성을 이용하는 사설망 방식은 매우 고가의 장비로 일반인이 사용하기 곤란했고, MSN을 활용한 화상통화는 화면과 음성이 자주 끊기는 등 기능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사용하기 불편했습니다. IT의 발달은 그러한 한계를 극복했고, 세계를 더욱 좁혀주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스카이프를 합니다.
제 노트북PC와 집에 있는 PC에는 화상통화를 위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컴퓨터를 켜면 제 PC는 제 ID로 집에 있는 PC는 아내의 ID로 스카이프에 자동 로그인 됩니다. 양쪽 모두 인터넷이 가능하면 스카이프로 화상통화를 무료로 무제한 즐길 수 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요즘엔 거의 음성과 화면이 끊이지도 않습니다.
한쪽이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다른 한쪽에서 스카이프로 상대방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됩니다. 스카이프의 요금정책이 전화를 수신하는 국가의 인프라 수준에 맞춰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스카이프로 한국의 핸드폰이나 일반전화에 전화를 거는 것이 유리합니다.  스카이프로 한국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분당 70원 정도의 요금이 필요한 반면 스카이프로 리비아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분당 330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언제 어느때나 인터넷이 가능한 한국에서 리비아에 있는 아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10분을 통화해도 3,300원이 드는 시스템은 축복입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스카이프로 아이들과 화상통화를 합니다. 그렇지만 전화를 끊은 뒤에 남는 묘한 허전함과 쓸쓸함에 휩싸입니다. 외로움이고 그리움입니다.  아무리 화상통화의 품질이 좋아도 살과 살이 부대끼는 사람의 정에 비길 수는 없습니다. 

한국의 아이들을 무척이나 안고 싶은 밤입니다. 

by 노마드 | 2010/02/08 06:19 | 리비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트리폴리에 대한 첫인상

리비아의 수도인 이곳 트리폴리는 저에게 몇가지 강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아니 제게 허락된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문득 트리폴리라는 이름을 들을때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눈부시게 푸른하늘과 천년의 세월이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트리폴리는 하늘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참 맑고 푸른 하늘입니다. 이곳 트리폴리의 하늘은 우리나라의 가을 하늘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싶고, 마냥 빠져드는 하늘입니다. 트리폴리의 맑은 하늘은 제가 트리폴리에 대해 간직할 가장 인상적이고도 아름다운 기억일 것 같습니다. 
더구나 맑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야자수는 더욱 일품입니다. 물론 많은 나라에 야자수가 있지만 도심에서 푸른 하늘과 잘 어우러진 야자수를 본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마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남부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종종 빠져 들게 합니다.  물론 이곳이 지중해 연안도시이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트리폴리는 역사가 깊은 도시입니다. 일찍이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이 무역거점을 찾아 리비아의 서부해안에 진출하여 이곳 트리폴리에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 뒤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습니다. AD 644년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아랍군에게 점령된 이래 이슬람제국인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아주 오랬동안 받았습니다. 오스만투르크의 지배가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어졌으니 말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군정통치를 받기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UN의 결정에 의해 리비아는 1951년 Muhammad Idris를 국왕으로 하는 연방왕국으로 독립합니다. 수천년 세월을 식민지로 지내온 이 나라에 도대체 누구를 왕으로 삼은 건지는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아무튼 왕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1969년 당시 약관 27세의 Muammar Al-Qadhafi 대위를 중심으로 한 청년장교 그룹이 트리폴리에서 무혈 쿠테타를 일으켜 수일만에 전국을 장악, 왕정을 폐지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리비아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이곳 트리폴리의 오늘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트리폴리엔 과거와 현재... 고대로마의 모습과 이슬람 문화 그리고 현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마치 1차대전 당시의 차량인 듯한 차와 21세기에 출고된 벤츠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개선문의 모습을 한 고대로마의 유적지 뒤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첨답이 보이고 그 뒷편엔 현대식 고층 호텔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론 그 위론 푸른 하늘과 야자수가 운치를 더해 줍니다.  


서정주 시인의 시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더욱 사람이 그리운 법인가 봅니다.  몸은 어느덧 이곳 트리폴리에 익숙해져가고 있지만, 이런 익숙함은 그리움을 채울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외로움이 서럽게 묻어나는 트리폴리의 아름다운 주말입니다....

by 노마드 | 2010/02/07 07:27 | 리비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리비아 가는 길

리비아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대한항공을 이용하고자 하는 애국적 스케줄 탓에 암스테르담에서 1박을 했습니다.
공항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을 먹고자 중앙역 근처를 행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암스테르담 공항은 꽤 자주 들렸지만,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꼭 10년만이었습니다.

2000년 여름 배낭여행 도중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한 날이 유로2000 준결승전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그 축제분위기의 암스테르담 중앙역의 모습이 아련히 떠 올랐습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은 10년전 그대로 였습니다.
잠깐 둘러보니 10년전 배낭여행 코스를 거의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영국만큼이나 네델란드도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앙역이나 주변 관광지의 모습이 전혀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전차는 아주 깔끔한 신형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신형전차의 모습이 동유럽과의 차별화 요소라고 할까요?
그래도 전차를 대중교통으로 이용하는 것 자체는 안바뀌었네요...


네델란드 공항 면세점에서는 꽃과 과일 그리고 치즈 등의 제품을 팝니다.

각 나라마다 반입을 꺼리는 식료품과 식물을 버젓이 팔고 있는 것이지요~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주식회사를 만들고, 뉴욕증권시장보다 300년 먼저 증권시장을 개설한 그들의 장사술에 다시한번 감탄을 하며 드디어 리비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대한항공 회원정보에 통로쪽 자리를 선호한다고 등록되어 있어서 왠만하면 통로쪽 자리를 주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창가쪽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주님의 계획과 배려였음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한참을 날아가는데 갑자기 구름을 뚫고 높은 산들이 나타났습니다.
직감적으로 알프스 산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뒤 친철한 기장이 오스트리아 어디쯤이며 알프스를 지나고 있다고 설명해 줍니다.
이제 알프스를 지나면 지중해가 나오고 그 지중해 끝에 아프리카 이집트와 지금 내가 향하는 리비아가 있는 것이지요...

알프스 산맥을 하늘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가지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알프스 산맥이 매우 높은 산이 엄청 오랫동안 계속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기껏 높은 산 서너개 지나는 그런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산을 넘고 또 넘어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설산...

저 광대한 산맥을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넘었습니다.
고대 로마가 서유럽을 넘어 영국까지 지배할 때에도 로마의 전차 부대는 저 알프스 산맥을 넘었습니다.
또 나폴레옹의 군대는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가며 그 무거운 대포를 끌며 저 산맥을 넘어 오늘 날의 이집트를 점령했습니다.

그 옛날, 세상의 끝일 것만 같은 저 산맥을 끝내 넘고야만 그들에게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조그만 산도 힘겨워 보이면 돌아가거나 피하기 일쑤였던 지난 나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산을 보고 지례 돌아서지 않겠노라고 다짐해 봅니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알프스 산맥이 끝나고 드디어 바다가 나타납니다.
지중해입니다.
어느 섬을 지나면서 섬 주변에 옥빛 바다빛이 도는 것이 지중해임을 실감케 해줍니다.

드넓은 바다도 육지를 만나 끝일 보이고, 드디어 육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드디어 리비아입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는 매우 조용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리비아가 내 삶의 또 하나의 전환점으로, 멋진 기회로 다가오길 소망해 봅니다.  

by 노마드 | 2010/01/25 05:17 | 리비아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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