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이라고까지 표현되는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인기를 놓고
최근 이런저런 분석과 토론이 신문과 공중파 TV에서 벌어지고 있다.
변변한 녹음실 하나 없이 울부짖는 에어콘 소리까지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
어느 실험적-소자본 대안방송의 이 찬란한 성공에 대해
기존 신문과 공중파 TV에서 분석이나 내놓는 진기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의 가치마저 위협하는 나꼼수에 대한
기존 언론의 반응이 곱지 않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저런 어려운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속내는 감출 수 없어 보인다.
기존 언론들의 속내는 다름아닌 '질투'와 '위기'다.
나꼼수의 경이적인 확산은 오로지 나꼼수 출연진의
개인기로 가능했다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팟캐스트를 활용한 방식 역시 IT 트렌드 변화를 적절히 활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혁신성과 참신한 감각에 기인한 것이었다.
두려움 없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나꼼수 4인방의 왠지 진실성이 있어 보이는 입심(말빨)
그리고 밉지만은 않는 자기자랑(깔대기)도 개인기라면 개인기일테니까...
나꼼수는 자본은 커녕 변변한 조직적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성장을 이뤘다고 본다.
나꼼수는 보수와 진보 진영 양쪽의 관심은 커녕 철저한 외면속에 탄생했다.
보수와 진보 어느쪽이든 그 핵심세력이 나꼼수에 대한 관심을 보인것은
나꼼수가 이미 입소문이 제대로 난 한참 뒤였을 것이다.
보수는 몰라도 진보진영의 조직적 지원이 있지 않았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꼼수의 김어준 총수는 우리나라 골수(?) 진보진영에서는 진보로 끼어주지도 않던 사람이다.
민주노총이나 재야단체 핵심일꾼 중 김어준을 '동지'로 여긴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그들은 오히려 보수진영보다 나꼼수를 늦게 알았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스마트 폰이 없다....)
심지어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은 김어준과 나꼼수를 그저 보편적 민중의 요구(소리)라고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이토록 열풍을 몰고온 나꼼수의 인기 비결을 분석해 보았다.
첫째는 콘텐츠다.
뭐니 뭐니 해도 제대로된 콘텐츠가 있어야 방송(뉴스, 연예, 드라마이든 상관없이)이든
책이든 강의든 콘서트든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가수, 수퍼스타 K, 1박2일, 무릎박 도사 등을 잠깐 생각해 봐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방송에서 별 내용도 없이 씨바, 씨발, X새끼, X까라는 원색적인 욕찌거리만 나온다면
누가 그 긴시간 동안 이어폰을 끼고 있겠는가?
그런데 나꼼수는 콘텐츠가 있다.
BBK, 저축은행,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청계재단, 4대강, 농협 전산망 사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그리고 최근의 선관위 문제 등 2011년 한국사회를 달군 뜨거운 이슈들을 나꼼수에서는 거침없이 다뤘다.
더구나 그들의 콘텐츠는 우선 쉽게 다가오고 이해된다.
정봉주, 주진우 등 왠지 사실(?)에 많이 근접했을 것 같은 그들의 주장은 쉽고 빠르게 이해된다.
먹물 근성 듬뿍 담은 현학적인 자세로 어려운 문자 써가면서
애매하게 혹은 윽박지르듯 이야기하는 각종 논평과 사설에 비해
그들의 콘텐츠는 140자에 모든 것을 담는 트윗터 세대와 싱크가 되어 있다.
둘째는 재미다.
지금 생각해도 흐믓한 2002년 월드컵 당시의 거리응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사회에 큰 변화의 흐름이 생겼다면 아마도 '재미'가 아닐까?
'한'과 '비장함'으로 각인된 시위문화에도 '재미'는 어김없이 새로운 트렌드로 다가왔다.
수년전 촛불 시위때의 모습을 돌아보면 87년 그리고 90년대까지의
시위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재미'라는 흐름이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나꼼수에는 '재미'가 있다.
거침없는 입담과 무용담 그리고 자기자랑(깔때기) 거기에 성대모사까지...
왠만한 예능프로그램에 내놔도 견줄만한 재미가 나꼼수 전반에 관통하고 있다.
초창기 나꼼수는 한 시간 남짓한 방송시간이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시간도 길어져서 거의 두시간 가까운 방송을 한적도 있다.
그 긴 시간... 자막 하나 없는 음성매체로 사람들을 채널(?)고정 시킬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재미'다.
셋째는 참여와 소망이다.
이따금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방송이 끝날 무렵
'그래서?', '그래서 누가 맞다고?', '그래서 어쩌자구?' 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명쾌한 결론을 바랬는데 '애는 이렇게 생각하고요,재는 저렇게 생각한데요~' 하고
결론 없이 방송이 끝나 버리는 그 찝찝함....
또한 혹자는 아주 뛰어난 천재적인 인물의 책을 읽고 난 뒤,
오히려 괴리감과 작은 절망감을 느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내가 작고 못나게 느껴지면서 더 막막해 지는 느낌이랄까....
최근 뚜렷한 문화 트렌드 중 하나는 일방적으로 관객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가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방송에서도 일방적인 시청자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1박2일의 주요 촬영지는 직접 가보고 느끼고 공유하고 싶어한다.
나꼼수에서는 방송을 듣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참여'가 있다.
그렇다고 대단한 '실천'과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나꼼수 4인 스스로도 엄청난 일을 벌이겠다고 떠들지도 않는다.
그저 '임금는 귀는 당나귀 귀~'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소리'하면서 놀겠단다...
지금 당장 거리로 뛰쳐 나와 물대포와 맞서라는 혁명적 비장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겹게 일궈논 가정마져 위협 받을만한 거룩한 결의-결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루에 2~3시간 정도만 자면서 밤을 새워 노력하라고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비범하면서도 완벽한 삶을 살라고 훈계하지도 않는다.
나꼼수에서는 그저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참여(실천)을 이야기한다.
무상급식때는 '투표하지 말자', 보권선거때는 '닥치고 투표'를 이야기했다.
누구나 아주 쉽게 '다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나꼼수를 듣고 실천한 사람들이 그 작은 실천속에
아주 오랫동안 잊고, 포기하고 살았던 '소망'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소망은 누군가에게는 구체적으로 정권교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의로운 사회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 등의 추상적 개념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나꼼수에서 다루는 핫이슈를 쉽고 재미있게 듣다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꼼수가 있었는지가 쉽게 이해되고
방송이 끝날 무렵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다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짐이 모여 '소망'이 되고 있다.
친절하게도 그 실천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까지 한다.
'쫄지 말라고'
나꼼수를 듣는 이유를 '콘텐트', '재미'그리고 '참여와 소망'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나꼼수를 깨려면? 혹은 나꼼수를 능가하는 무엇이 나오려면
글쎄...
나꼼수 보다 알차거나 민감한 사안을
나꼼수 보다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나꼼수 보다 명확하게 대안을 제시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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