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홍차 한방울을 닮은 나라 스리랑카_2009년 8월

스리랑카. 인도 옆의 조그만 섬나라다.
스리랑카가 처음 나에게 다가온 것은 몇 년전 있었던 쓰나미 피해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쓰나미로 인해 5만명이 죽었고, 국토의 상당부분이 침수피해를 입었다는 소식. 그런데 내가 스리랑카의 쓰나미 피해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쓰나미가 발생한 지역에서 스리랑카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다시말해서 재산피해는 몰라도 인명피해는 현저히 줄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의미다. 국가 재난방지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과 탄식이 절로 나왔었고 그런 이유로 나는 스리랑카를 기억하고 있었다.
스리랑카는 국토의 모양을 닮은 여러 별명이 있다. 혹자는 인도의 눈물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땅만 파면 보석이 나오는 나라를 상징하는 보석 모양이라고도 했다...

스리랑카 행정수도 콜롬보의 작은 호텔은 무척이나 덮고 습했다. 호텔 바닦이 카펫이 아닌 돌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에어콘을 최대한 올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방안 가득했던 짠기운과 끈적거리는 느낌을 지울 수 있었다... 몰디브의 맞은편이라 옥빛 산호초의 바다를 기대했지만, 여름엔 우기로 파도가 높아서 그런 바다는 볼 수 없단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누에라엘리야로 향했다....
세계 3대 명차 산지 중 하나인 스리랑카. 흔히 실론티라 불리는 스리랑카 홍차의 산지인 누에라엘리야는 해발 19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도가 올라갈 수록 덥고 습한 기운이 점점 없어지더니, 차량용 에어콘도 필요없게 되었고 나중에는 주섬주섬 긴 옷을 꺼내 입었다....


주변에 차밭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 사방이 차밭이다....
구름이 나무에 물을 주고 간다는 이 험한 산지에서 차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토록 험한 산지를 차 밭으로 일구어 내고 매일 찻잎을 따는 사람들...바로 수백년 전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인도에서 건너온 타밀족 사람들이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은 차를 재배할 수 있는 식민지를 세계 곳곳에 건설했다. 특히 아편전쟁 이후 중국과의 차 교역이 원할치 않게 되자 영국은 스리랑카에 주목한다. 그들은 아삼이라 불리는 강한 맛이 나는 인도 남부의 차와는 달리 오렌지색 혹은 황금색을 띄며, 떫은 맛이 없는 우아한 맛과 고산지대 야생화 향기가 나는 차를 생산해 내는 스리랑카의 고산지대에 매료됐다. 더구나 그곳 누에라엘리야의 기후는 그들의 고국인 영국의 기후와 매우 닮아 있었다. 그런데 스리랑카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싱할라족은 차(Tea)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도의 최하층민인 타밀족을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1828년 인도 타밀 노동자들은 집과 먹을 것이 보장된다는 말에 스리랑카 행을 택했다. 그 뒤 1877-1878년  인도가 극심한 기아상태에 빠지던 때에 다시 150,000명이 건너왔다. 이들은 정글 개간, 도로 구축, 철도 건축, 플랜테이션 기반 준비등 차밭을 개척했다.

그런데 1948년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타밀족 노동자는 다수파인 싱할라족에게 나라 없는 이방인으로 취급되었다. 시민권과 인간의 기본 권리(주거 환경, 의료 혜택, 교육)조차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끊임없는 인권 운동으로 1974년에 가서야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16만 가정, 100만명이나 되는 타밀족 노동자들이 고산지대에 집중되어 살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그들은 열대 고산지대의 숲을 차밭으로 만들고 차를 생산하며, 식민지 시대의 수탈과 가난 오랜내전과 계급적 차별, 인종차별 속에서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차밭에서 태어나 평생을 찻잎을 따는 노동의 굴레 속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가 마지막에는 차밭의 거름이 되어버리는 삶을 사는 그들.... 누에라엘리야에서 찻잎을 따는 여인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참 철저히도 비주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도 비주류인 인도 타밀족...카스트도 불가촉 천민이라는 최하층. 종교도 스리랑카는 불교국가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힌두교 신자 그리고 여자...

하루 18kg의 찻잎을 따야 정해진 일당 약2000원을 받을 수 있단다... 그나마 책임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아파서 차밭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임금이 깎인단다...

고산지대에 단순하게 시멘트로 지어진 10평 남짓 하는 이들의 집엔 아직도 전기가 없는 곳이 많이 있었다. 스리랑카 홍차는 전 세계로 수출 되고있다. 2007년 스리랑카의 홍차 수출액은 1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13%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 경제는 2세기 이상을 홍차 산업에 의존해왔다. 2~3세대에 걸친 노동의 역사와 오랜 시간 스리랑카 경제에 있어서 중요한 차 산업을 유지시켜온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기와 주거에 대한 기본적인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부 고산지대 차밭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름다운 차밭, 스리랑카의 유명한 홍차 관광지,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스리랑카를 다녀온 지금도 홍차를 마실 때마다 빗속에 맨발로 차잎을 따던 타밀족 여인들이 생각난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눈물도 보석의 모양도 아니다....
바로 누에라엘리야 타밀족 여인의 핏빛 땀방울과 한의 눈물을 우려낸 홍차 한방울을 닮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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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 2009/08/31 17:51 | 여행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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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아까 at 2009/09/14 07:03
스리랑카와 홍차에대해 검색하다가 들어오게되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이유원 at 2009/09/28 19:53
스리랑카를 제대로 보신 글, 인도의 눈물이 아니라 눈물의 실론티가 어울릴 것 같습니다. 하나 지적하자면, 스리랑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스왈라가 아니라 싱할라 아닌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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